[경남거제]화가 났다. 폭스바겐코리아의 7세대 골프를 대면하는 순간부터 시승을 마치기까지 분노와 자괴감, 상실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974년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골프는 우리 자동차 산업의 시작이 된 현대차 포니와 너무나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골프는 여전히 살아서 세계 자동차의 역사를 차분하게 이어오고 있고 포니는 저 멀리 흔적조차 찾기 힘든, 사라진 유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골프와 포니는 이 시대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 이탈리아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손 끝에서 탄생을 했다.

골프는 1974년 양산을 시작했고 포니는 같은 해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컨셉트카로 데뷔를 했다.

내년이면 두 모델이 탄생 4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해가된다. 그러나 7세대의 진화를 거치며 여전히 세계 자동차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골프와 달리 단명(短命)한 포니는 과거의 이야기로만 회자가 될 것이 뻔하다.

현대자동차의 최고 경영자들이 제대로 된 가치관, 자동차의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았다면 포니도 지금 7세대, 혹은 8세대의 진화를 거쳐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그렇지 않은 현실이 부아가 끓고 화가 나는 이유다.

40년, 골프가 바로 해치백의 역사=골프의 시승기가 포니와 얽혀 시작되는 이유는 40년 가까이 수명을 연장해 온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이 차가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몰론 골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모델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3000만대 누적 판매라는 기록의 의미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누려온 영향력은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폭스바겐이 강조하듯 골프는 아우디와 포르쉐, 벤틀리 등 그룹 산하 전 브랜드, 전 라인업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모델이다.

세계 최초의 해치백이라는 타이틀과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공간이 주는 골프의 매력은 독일에서 날아온 닥터 하켄 베르그 폭스바겐 기술 개발 부분 담당자와 미국에서 날아온 임범석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CCD) 운송디자인학과 교수가 공통적으로 표현한 한 마디로 압축을 할 수 있다. 골프야 말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사고 싶은 차"라는 것이다.

단정한 상고머리, 촌뜨기처럼 투박=경남 거제에서 만난 7세대 골프는 그러나 요즘의 트렌드로 보면 딱히 볼품이 없다. 특별히 강조할 만한 디자인적 요소대신 너무나 평범해서 짧은 상고머리를 한 시골 청년처럼 단정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폭스바겐은 골프의 외관이 산업 디자인 역사의 확실한 존재감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로 장황하고 자신있는 칭찬을 늘어 놓았다.

이런 자신감의 근거는 지난 수십 년간 끝없이 다듬어져 오면서도 절대 버리지 않는 철학이 골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골프는 7세대를 거치는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깎고 다듬고 정교한 작업을 거쳐 농염해진 외관이 특별하게 흠을 잡을 것도, 그렇다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지만 더 없이 정갈하고 효율적이면서도 기능적으로 변화를 했다.

7세대 골프가 외관의 전체 실루엣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데도 더 견고해 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폭스바겐의 차세대 생산방식인 MQB 플랫폼의 첫 작품으로 차체의 사이즈(전장 4255mm, 전폭 1799mm, 전고 1452mm) 대비 크게 늘어나면서 놀랍도록 완벽한 차체 비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8mm나 낮아진 전고, 경사각이 늘어난 A필러의 변화와 여전히 강하고 두터운 C필러까지 더해져 스포티함이 강조된 것도 7세대 골프 디자인의 특성이다.

사치스러워진 인테리어=실내는 기존 골프보다 사치스러워졌다. 너무 많이 사용된 크롬이 클러스터와 센터페시아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직관적인 것을 장점으로 했던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디지로그'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버무린 실내의 구성도 여전하다. 시트와 도어안쪽의 직물소재는 여전히 촌스럽고 전동과 전자에 익숙해진 탓에 시트를 조절하는 것도 여전히 불편하다.

센터페시아를 운전석쪽을 살짝 기울여 시인성과 동선을 줄인 조작 편의성 개선은 칭찬할 만한 변화다. 화이트 컬러의 룸 미러 패널, 수평을 강조한 인스트루먼트 패널까지 폭스바겐이 추구해 온 간결함도 여전하다.

1.6 TDI 블루모션과 2.0 TDI 블루모션의 인테리어 구성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듀얼 에어컨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있다.

공간의 여유는 차체가 커진 만큼 조금 더 넉넉해졌다. 후석 레그룸도 그렇지만 특히 380리터의 트렁크적재용량도 골프백 2개는 여유가 있을 정도로 넓다.

탁월한 접지력, 뛰어난 운동성=이날 시승은 부산 경마공원에서 거제도에 있는 대명리조트까지 오가는 꽤 먼 거리에서 이틀 동안 진행이 됐다. 고속도로와 완만하고 제법 난이도가 있는 와인딩 코스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코스를 잡았다.

수입차에서는 이제 보기가 힘들어진 키를 꼽고 돌리면 골프 특유의 엔진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주 조용하고 고른 어린아이의 숨소리처럼 정숙하게 시작을 하는 것이 기분을 좋게 한다. 무엇보다 정숙성에서는 관리가 조금 소홀한 가솔린 차보다 낫다고 자신해도 좋을 만큼 완벽하다.

1.6 TDI 블루모션과 2.0 TDI 블루모션을 바꿔가며 하는 시승에서 배기량과 출력, 토크의 차이에서 오는 변별력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차량 모두 운전자가 의도하는 모든 상황을 도로의 여건과 상관없이 완벽하게 받아 들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거제도의 절경을 볼 수 있는 신선대를 오르는 가파른 코스를 험악하게 달려도 골프는 강력한 접지력을 보여주며 자기 탄력을 유지했다.

몸무게를 100kg이나 줄이고 다소 늘어난 차체에 대한 부담, 열악한 토션빔으로 우려됐던 차체의 미끌림과 불안정한 차체의 자세도 기우에 불과했다.

다만 급한 출발에서 나타나는 굼뜬 반응, 가속력은 골프가 갖고 있는 뛰어난 조향, 운동 능력에 비해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이런 아쉬움은 2.0 TDI 그리고 드라이빙 프로파일 셀렉션(Driving Profile Selection)의 스포츠 모드로 달리면서 어느 정도 보상이 됐다.

2.0 TDI 블루모션 및 프리미엄 모델에 탑재된 차세대 1968cc 2.0 TDI 엔진의 경우 최고 출력 150마력(3500~4000rpm), 최대 토크 32.6kg.m(1,750~3,000rpm)의 성능을 발휘한다.

최고속도는 212km/h, 0-100km 도달시간은 8.6초, 복합연비 16.7km/l(고속: 19.5/ 도심: 15.0)를 자랑한다.

1.6 TDI 블루모션은 1598cc 1.6 TDI 엔진과 듀얼 클러치 방식의 7단 DSG 변속기가 장착됐고 복합연비는 18.9km/l(고속: 21.7/ 도심: 17.1)다.

최고출력은 105마력(3000~4000rpm), 최대토크 25.5kg(1,500~2,750rpm), 최고속도 192km/h, 정지 상태에서 100km 도달시간은 10.7초의 성능을 갖고 있다.

수입차 맹주 노리는 폭스바겐의 선봉대 골프=폭스바겐코리아는 골프의 또 다른 라인업 2.0블루모션 프리미엄. 그리고 내년 가솔린 모델을 투입해 수입차 시장 맹주자리를 노리고 있다.

선봉에 선 장수 골프의 시작은 일단 순조로워 보인다. 선 계약이 600대, 가격(1.6 TDI 2990만원, 2.0 3290만원)이 공개된 이후에는 하루에 100대가 계약됐다.

요즘 국산 신차의 성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놀라운 실적이다. 때문에 골프는 더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수입차=프리미엄이라는 공식을 깨고 한국 수입차 시장에 해치백, 디젤, 소형차 시대를 개척한 폭스바겐이 새로운 맹주로 등극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